교육교육일반
독립기념관, 올 7월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6.28  11:04:4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연미당 선생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을
2018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연미당의 본명은 연충효로, 1908년 7월 15일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중국 세관에 근무하던 부친의 근무지 이동에 따라 상해 인성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진강 여자중학교에서 수학했다.

부친 연병환을 비롯한 연씨 형제 모두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는데 이러한 집안 분위기가 연미당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27년 3월 연미당은 만 19세의 나이로 엄항섭과 결혼했다.

엄항섭은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 참여한 인물로, 부친 연병환과 친분관계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미당·엄항섭 부부는 독립운동 세력 단결을 위해 힘썼는데, 1927년 11월 중국 관내지역 청년단체들과 함께 중본부한인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1928년 9월에는 재중국한인청년동맹 상해지부 결성에 따라 각각 청년동맹과 청년여자동맹에서 활약했다.

연미당은 1930년 8월 한인여자청년동맹 창립에 참여했는데 임시정부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상해 거주 교민들의 단합을 위해 노력했다.

1932년에는 한인여자청년동맹 임시위원으로 선출돼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가 일어나자 일본 경찰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한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검거와 수색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주도 인물이었던 남편 엄항섭이 먼저 피신하고, 연미당과 임시정부 요인들도 가흥으로 이주했다.

상해를 떠난 엄항섭은 임시정부와 중국정부 간의 연락 임무를 맡고, 연미당은 남편을 대신해 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시며 피신생활에 들어갔다.

연미당은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결성해 선전과 홍보활동에 주력했다.

중국 선전공작대와 함께 활동했는데, 일본군 내 한국인 병사 모집과 함께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위문공연과 선전·홍보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연극이나 무용 등은 여성대원들에 의해 기획됐고 연미당의 맏딸 엄기선도 어린 나이에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가했다.

1940년대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자 여성들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고, 1943년 2월 23일 한국애국부인회 재건대회가 개최됐다.

연미당은 조직부 주임을 맡아 실질적으로 조직을 운영했으며 방송을 통해 국내외 여성 동포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거나 광복군으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연미당은 남편을 대신해 자녀들을 교육하고 양육한 실질적 가장이었고, 항일투쟁전선에 뛰어든 독립운동가였다.

정부는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연미당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문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송골1길 17 (203,원진휴먼빌)  |  대표전화 : 041-581-3007  |  팩스 : 041-581-3008  |  등록번호 : 충남 아 00231
간별 : 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4. 6. 18  |  발행일 : 2014. 6. 24  |  발행인 : 정문교  |  편집인 : 권환철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정문교
Copyright © 2022 뉴스앤충청.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