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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5월의 독립운동가 신건식·오건해 부부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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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9  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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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건식 오건해 신순호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신건식과
오건해 부부를 2018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신건식 선생은 청주 상당산성 동쪽에 살던 고령 신씨, 일명 산동신씨 문중에서 태어났다.

이 문중은 독립유공자 13명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명문가로 산동삼재山東三才라 일컫는 신규식·신채호·신백우가 힘을 합쳐 문중 개화를 위한 문을 열었다.

신건식은 형 신규식이 세운 덕남사숙에서 공부했고 이후 상경해 육군무관학교와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했다.

신건식은 1911년 형 신규식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했고 항저우에 있는 저장성 의약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1912년 상하이로 돌아와서 형 신규식이 박은식 등과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에 참여해 신환申桓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28년에는 난징의 중앙육군군관학교 외과주임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난징에 거주하던 한인 동포와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다.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돼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특히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창설 직후 중국군사위원회에서 한국광복군을 통합 지위한다는 9개 준승 폐지를 여러 차례 요구해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자주성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재무부 차장을 맡아 예산과 재정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오건해는 1894년 오우석과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청주 인근 현도면 등지가 친정이고, 인접 지역에 거주하던 신건식과 혼인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건식은 단신으로 상하이로 망명했는데 딸 신순호에 의하면 4세가 되던 해에 중국으로 건너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오건해는 임시정부 안살림과 독립운동가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1938년 5월 김구가 창사에서 총격을 당한 ‘남목청사건’ 때에는 입원 이후부터 회복할 때까지 봉양을 맡았다.

또 1940년 화평로 청사와 1945년 연화지 청사가 폭격을 당해 사돈인 박찬익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오건해는 딸 신순호와 함께 이들의 회복에 많은 도움을 줬다.

1940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하자 이에 참가했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오건해는 오직 독립운동가 뒷바라지에 그치지 않고 남편 신건식과 함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부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신건식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오건해에게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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