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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2월의 독립운동가 ‘김치보 선생’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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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9  13: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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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국민 노인동맹단명부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치보 선생을 201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치보(金致寶·金致甫)선생은 1859년 9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50세가 되던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러시아 이주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0년 8월에 들어와 나라가 일제에 강제병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해주 한인들은 병탄 반대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성명회를 결성했다.

성명회는 각국 정부에 강제병탄 무효를 선언하는 전문을 보내는 한편, 일제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선언서를 발표했고 김치보도 선언서에 이름을 올렸다.

성명회는 일제의 압력으로 1910년 9월 해산됐지만 선언서에 서명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권업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고 김치보는 통신부장에 선임됐다.

권업회는 『권업신문』 간행, 교육진흥활동,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만세 운동의 소식이 국외로 전해졌고 1919년 3월 17일 연해주에서도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는 등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에 김치보는 1919년 3월 자신이 운영하는 신한촌 덕창국에서 청년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선출됐다.

노인동맹단은 46세 이상의 연령제한을 두었을 뿐 남녀를 가리지 않고 회원을 모집했다.

노인동맹단은 국내 및 국외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 강우규를 국내에 파견해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총독을 처단하고자 했고 강우규의 의거는 실패했지만 국·내외 독립의지를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자 일제는 1920년 4월 기습적으로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 이때 노인동맹단의 주요 간부들이 붙잡히거나, 도피하면서 사실상 해체하게 됐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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