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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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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31  1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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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주 선생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을 2017년 11
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근주 선생은 1860년 2월 충청남도 홍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근주는 분개하며 홍주 목사 이승우, 김복한 등 지역의 유생들과 연합해 의병을 규합했다.

그러나 창의소를 설치한 다음날 이승우가 배반해 주요인물들이 붙잡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근주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워 화를 면했지만 홀로 무사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노모와 형이 자수는 다른 날 다시 도모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만류에 뜻을 꺾었다.

1896년 청양 일대에서 전(前) 수군절도사 조의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했으나 조의현이 관군에 붙잡힘으로써 의거는 다시 좌절됐다.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려는 뜻이 좌절됐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제국주의 침략과정과 나라 잃음의 설움을 많은 글 속에 담아냈다.

1895년 홍주의병의 과정을 기록한 '을미록乙未錄', 나라가 매군매국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한 '절의가節義歌', 장부인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탄만 하고 있음을 적은 '신년탄사 新年嘆辭'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민영환과 이설에 대한 애도시 등을 남겼다.

의병을 일으키려는 뜻이 연이어 좌절되고 1910년 8월 강제병탄이 되자 선생은 자결로 일제의 침략에 항거했다.

선생은 1910년 '태일자문답약초 泰一子問答略抄'에서 ‘슬프고 분하며,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 앞 나무에 사학을 배척하고 정학을 지킨다는 뜻의 ‘존화양이 척사부정尊華攘夷 斥邪扶正’의 유언을 새기고 1910년 9월 자결했다.

이근주의 자결은 평소 삶의 자세로 삼았던 맹자의 ‘사생취의捨生取義’ 즉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것이다.

선생과 함께 의병을 규합했던 김복한은 의로움을 취했으며 인을 이루었다고 그의 공적을 기렸다.

이근주의 죽음은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후학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정부는 이근주의 공적을 기리어 1991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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