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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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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31  10: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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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리 전투 재현도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나중소는 1867년 4월 13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출생해 1882년 16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고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했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함북시찰관과 진위대 부위(副尉)로 활동했다.

1917년 51세의 나이에 만주로 망명했으며 1919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돼 독립군 양성을 위해 노력했고 대한정의단이 대한군정서로 확대 개편되자 대한군정서의 참모부장으로 김좌진과 함께 활동했다.

1920년 2월 초 북간도 왕청현에 대한군정서 사관연성소를 설립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청년 300명을 선발해 교육했다.

1920년 9월 9일에 제1회 사관연성소 졸업식이 거행됐고 졸업생 298명 중 80명은 소위로 임명ㆍ배치됐으며 나머지 200여 명을 중심으로 교성대(敎成隊)가 조직됐다.

교성대는 대한군정서의 최정예부대로 청산리전투 당시 백운평전투와 천수평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했으며 교성대의 대장이 바로 나중소였다.

청산리대첩 후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통합운동을 주도했다.

1921년 4월 12일 러시아에서 활동 중이던 36개의 독립군 지도자들은 ‘독립군대회’를 개최하고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면서 이때 나중소는 이장녕과 함께 참모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그러나 대한독립군단의 계획은 1921년 6월 자유시참변으로 좌절돼 서일․김좌진 등과 함께 북만주를 돌아온 뒤 만주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들의 통합운동을 추진해 그 결과 1924년 3월 대한군정서를 재조직할 수 있었다. 나중소는 1925년 1월 대한독립군단ㆍ대한독립군정서 등의 지도자들과 함께 부여족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신민부를 조직했다.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회 및 검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26년 3월에는 신민부 돈화변사부를 설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년 8월 18일 돈화현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활동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독립기념관에서는 나중소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9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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