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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유자명 선생 친필 중국어본 ’회억록‘ 자료’ 최초 공개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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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29  13: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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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명 선생 자료 기증서 서명 장면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3․1절 97주년을 맞아 중국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유자명(友槿 柳子明·1894∼1985) 선생의 친필 중국어본 '회억록(回
录)'을 2월 29일(오전10시) 최초로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중국어본 '회억록'은 2015년 9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에 참석한 유자명 선생의 따님(柳得櫓)과 아드님(柳展輝)께서 기증한 것이다.

중국어본 '회억록'에는 유자명 선생의 출생에서부터 1935년까지의 독립운동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회억록은 1982년까지 유자명 선생 친필로 수정을 하며 교열을 본 것으로 기존에 알려진 선생의 한국어본 회고록 보다는 내용적으로 상세하다.

중국어본 회억록과 더불어 30여 점의 귀중한 자료들이 함께 공개돼 유자명 선생과 1920~1930년대 재중 독립운동 연구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중국어본 회억록 친필 원고는 중국 인민방송국 조선어부 김형식(金亨植)씨가 1982년 유자명 선생을 방문해 원고를 분할해서 가져갔다.

1985년 유자명 선생이 별세한 후 원고는 김형식씨가 소장하다 2005년 유자명 선생의 아드님과 따님에게 돌려줬다.

중국어본 회억록 원고는 유자명 선생의 아들 유전휘, 딸 유득로 교수가 소장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유전휘․유득로 교수가 2015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를 참관하고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자명 선생의 자료들과 함께 기증하게 됐다.

기증식은 2015년 9월 18일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회의실에서 진행됐으며 기증자료는 중국어본 회억록 친필 원고를 비롯해 친필 이력서 등 총 30점을 기증했다.

   

             유자명 자필 회억록

중국어본 회억록은 전체 제14장으로 구성됐으며 출생에서부터 1935년 5월까지 기록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1999년 유자명 선생의 '한 혁명자의 회억록' 한글 친필 원고를 ‘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 제14집으로 간행한 바 있다.

한글본 회억록은 1991년에 중국 동포를 통해 입수돼 1999년에 '유자명 수기 한 혁명자의 회억록'이라고 명명해 원고본을 영인 간행했다.

한글본 '한 혁명자의 회억록'은 전체 20장으로, 원고는 전체 470쪽으로 구성돼 있으며 중국어본 회억록은 300자 원고지에 중국어로 작성하고 후에 자필로 수정했다.

원고에는 빨간 펜으로 수정되어 있으며, 원고지를 덧붙여서 내용을 추가한 부분도 있다.

유자명 선생이 한글본과 함께 중국어본 회억록을 저술한 목적은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에게 한국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자 했으며 자신의 독립운동을 중국어로 작성해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유자명 선생은 1920년 의열단에 가입 이후 임시정부 등 여러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계열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중국어본 회억록에는 재중국 아나키즘 운동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유자명 선생은 아나키즘 이론에도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 중국어본 회억록에는 중국에서 전개된 아나키즘계열의 독립운동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유자명 선생이 자필로 개인의 이력을 기록한 문서로서, 원고지에 작성돼 있고 모두 9쪽으로 돼 있다.

이력서의 1쪽에서부터 5쪽(일부)에는 출생부터 1983년까지 개인 이력이 기술돼 있고 5쪽부터 9쪽에는 개인 논문이나 저술에 관해 기록됐다.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인 파금(巴金)이 유자명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보내는 사람(파금)의 이름과 발신년도도 없이 날짜(2. 18)만 기록돼 있다.

파금은 쓰촨성(四川省) 청뚜(成都)의 대지주 관료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나키즘에 심취한 인물로 유자명 선생과 지속적인 교류를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유자명 선생의 백발을 소재로 1936년 ‘머리칼 이이야기(髮的故事)’라는 작품을 쓸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유자명도 '나의 회억'이라는 회고록에서 “파금이 1938년 계림에서 영화배우 김염의 누이 김위가 부르는 아리랑에 감동해 그의 작품 「불」 제1부에 써 넣었다”라고 기록했다.

유자명이 중국인 부인 유칙충(刘则忠)에게 준 선물이 있다.

선물은 나무함으로 큰 나무함에 작은 나무함이 들어가도록 제작돼 있다.

나무함은 모두 뚜껑이 있으며 4개로 구성돼 있으며 나무함의 겉면은 금색이고, 안쪽은 검은색과 금색이 혼합되어 칠해져 있다.

가장 바깥쪽 상자의 뚜껑 일부는 파손되어 있고 나무함의 겉면 밑바닥에는 제작로고(中華福洲沈紹安蘭記-SHEN SHAO AN LANG KEE, FOOCHOW, CHINA)가 새겨져 있다.

유자명 선생은 1910년 16살 때 국내에서 결혼을 했으나 1919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해 그후 1933년 중국에서 중국인 유칙충과 결혼을 했다.

1978년 6월 13일 개최됐던 ‘호남성교육전선 선진단위선진공작자대표대회(湖南省敎育战线 先進單位先進工作者代表代会)’에서 발간한 ‘간보(简报)’로, 1매 3면으로 돼 있다.

이 자료의 3쪽에 유자명 선생에 관해, 호남농학원 원예계 노교수로 소개돼 있고 당시 85세의 나이로 이 대회에 참석했다.

   

  유자명 선생의 기사가 게재된 호남과기보

1980년 5월 22일 유자명 선생의 삶과 포도에 대해 유자명 선생이 쓴 글을 게재한 신문[호남과기보(湖南科技报)]이다.

4쪽으로 구성돼 있는 신문의 1면 상단과 하단에 각각 유자명 선생을 소개하는 글과 포도에 대해 유자명 선생이 쓴 글(建议大力发展葡萄)이 게재돼 있다.

61년 동안 중국에서 활동했던 유자명 선생을 소개한 글의 제목은 “峥嵘的岁月丰硕的成果”이며, 그를 ‘조선우인(朝鮮友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그를 소개한 글에는 상반신 캐리커처(caricature)도 그려져 있으며 '호남과기보'는 1957년 창간된 신문으로 중국에서 발간된 최초의 과학신문중의 하나다.

유자명이 ‘상대성 온도와 식물생장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자필로 작성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상대성 온도와 식물의 생장에 관련된 내용을 6장(결론 포함)으로 기술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유자명 선생

유자명 선생은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을 계획했으나 발각돼 서울로 피신했다.

그 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그해 6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간 뒤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신한청년당 당원으로 활약했다.

1920년 가장 강력한 의열투쟁을 전개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투쟁했고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중국내 최초의 아나키즘 독립운동단체인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했다.

아울러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남화한인청년연맹․조선무정주의자연맹 등 중국내 각종 한인아나키즘 운동에 가담했다.

유자명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도 잘 알려졌지만, 아나키즘 이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중국에서는 유명한 농학자로 호남농업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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