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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정문교 기자  |  moongyo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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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2.01  10: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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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룽징에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송몽규 선생. 뒷줄 오른쪽이 그의 고종사촌 윤동주.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송몽규, 안창남, 김필순 선생을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송몽규, 안창남, 김필순은 각각 인문학, 과학기술, 의학 분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으로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들이 습득한 지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법을 마련하는데 헌신했다.

송몽규는 1917년 중국 룽징(龍井)에서 태어났다. 1935년 난징(南京)에서 김구가 설립한 학생훈련소에 입소하고자 고향을 떠났으며, 지난(濟南)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36년 4월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후 학생단체 문우회의 기관지 󰡔문우󰡕의 편집을 맡아 일제의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에도 한글로 된 시(詩)를 실어 우리글을 지키고자 했다.

1942년 교토(京都)제국대학 사학과에 입학한 후, 재일한인 유학생과 교류하며 조국 독립 방안을 강구하던 중‘징병제를 독립 수단으로 삼아 독립을 모색’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1945년 옥중 순국했다.

안창남은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21년 오구리(小栗)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한인으로서는 처음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으며 다음해 고국 방문 비행을 실시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본 그는 비행 기술을 독립운동에 활용하기로 결심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군과 협력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비행사 양성에 힘썼다.

1928년에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해 군자금을 모아 비행학교 등 무관학교를 설립하려는 등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1930년 산시(山西)항공학교에서 비행 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추락해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김필순은 1878년 황해도 장연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醫術開業認許狀)을 받은 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와 간호원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1907년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를 지원하고 신민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1911년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해 독립운동을 탄압하자 중국 동북지역(만주) 퉁화현으로 이주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힘썼다.

1916년 일제의 간섭을 피해 내몽골 치치하얼로 옮겨 진료소를 개설해 의료 활동에 종사하고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추진하던 중 1919년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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